산책



  그림자 그림을 그리자.
 
  그림자로 물든 집과 달과 길

  그림자에 멍든 사람이 있고

  그림자에 스민 짐승들이 있는 그림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와 기담이 있고

  또다시 우아하고 감상적으로 젖어가는 

  그림 속에 조용히 어두워가는 음악이 울어

  비웃음이 한 마디 되어 깨끗하게 가라앉는 그림.

  

  그림자에 물든 달빛 가라앉고 길에는 파스름한 물이 스미고

  그림자에 멍든 사람과 춤을 추는, 상냥한 춤을 추는
  음악같은 바람이 무채색으로 흩어지고

  그림자에 스민 짐승의 울음이 차분히 겹쳐 
  노란 연필같은 심을 숨기고 비웃음이 되는 정원

  노오란 모자란 소설책을 머리에 쓰고 깔깔대며
  우울하게 몸을 맞대는 당신을 지우개로 부비는

  새벽, 아득히 부서지는 조각 속에서

  그림자 그림을 그리는 자.

by 바람길 | 2009/10/25 21:11 | 트랙백 | 덧글(0)

제국의 동력과 양산빵공장을 흔드는 오징어채에 대하여,



  여기는 제국이다 
  제국의 밤을 굴리는 노란 손수건'
  밤을 깊어가게 하는 것은 밤이 아닌 것들이라
  널부러진 쓰레기봉지가 밤이 되는건 보통이다
  밤을 모르는 자는 밤을 널부러놓고 이놈, 이놈
 
  쓰레기장과 47번 국도 후로페쇼날-의 관계를 모르는 자는 밤의 주민이 아니다 밤의 주민은 제국의 주민 말을 할 수 없는 감옥 속으로 가막새 슬피 울고 스러진다 여기는 제국 제국의 밤을 굴리는 노란 손수건을 모르는 자들의 슬픈 조각말
  이놈, 이놈, 쓰레기장이 널부러지면 제국의 조랑말이 널부러지고 제국은 죽은 자들의 도시 이놈 이놈 식인오징어 밤고양이 주제에 밤고양이 주제에 쓰레기통을 뒤지나 쓰레기통을, 무너지는 죽은 밤에 쓰레기통을 밤을 깊어가게 해주세요 제발 쓰레기통 속엔 소음이 너무 많아 소름이 끼쳐요 무너지는 죽은 밤에 소주 한잔 넘치고 아파요 아픈 것은 밤고양이 밤고양이 주제에 밤고양이 주제에 쓰레기통이 아파요 무너지는 건 파란 파리라지만 파란 파리도 눈물같이 터져오르고 폭발하기 직전의 재채기, 처럼 말을 덮는 제국의 밤과 새벽의 곰보달
  소음과 밤의 수명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늙은 박사와 쓰레기통과 하멜룬의 피리 부는 사나이, 오늘 밤은 누가 잠들지 몰라 체스판 위엔 수명이 없는 것들끼리 서성거리고 중얼거려요 잠과 숨과 슬픔 사이의 조각상들 연신 내가 생각했던 조각말들 연신내에서갈아타고 돌아오고

  제국의 밤을 갈아타는 식인오징어와 푸른 파란 조랑말과 흔들리는 오래된 이야기들 이야기 속 낡은 폭탄을 갈아끼울 때까지 울지않을께요 낡은 밤고양이들을 연주하는 제국의 양산 빵공장

by 바람길 | 2009/10/19 23:25 | 트랙백 | 덧글(0)

나와 당신의 이야기.



  나의 손은 하나를 모릅니다 손은 둘 하나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적지 못하죠 손은 둘, 하나의 손은 음모를 꾸미고 하나의 손은 음모를 적고 하나의 손으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죠 하나를 모르는 이야기만이 재미있습니다- 손은 둘, 둘의 시간 속에서 지피는 불만이 차가운 숨을 적실 수 있습니다, 손은 둘.

  오늘은 커피를 마셨어요 어제 마신 커피와 같은 커피. 어제 마신 커피의 향에서는 목숨이 한 송이 피어났어요 약간 태운 향에서만이 목숨이 피어나는 법이죠 잔 속에서 수다를 떨던 하나와 둘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죠 어제 마신 커피는 잔 속에 당신을 머금으려 해요 이건 하나의 불, 당신은 잔 속에 하나와 둘을 머금고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이건 손의 음모죠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처럼

  (매듭을 묶는 것은 잔인한 일이지만, 로프의 끝은 언제나 상대방을 피하고)

  오늘은 커피를 마셨어요 어제 마신 커피와 같은 커피, 어제 마신 커피의 향에서는 목숨이 한 송이 피어나고 오늘 마신 커피의 향에서는 아무 것도 피어나지 않았어요 음모는배신을부르고배신은이야기를부르는법이죠 잔 속에서 수다를 떠는 하나와 둘은 하나를 모르고 둘을 몰라서 당신을 머금으려 들지 않았어요 이건 잔인한 이야기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몰라서야 되겠나요 하나의 불이 하나의 장작을 필요로 하듯이

  나의 손은 하나를 모르지만 손은 둘, 이야기를 적기엔 모자라지 않죠 손은 둘, 음모를 꾸미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손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두개의 손입니다 이야기를 모르는 손만이 재미있지요- 하나의 불만이 오직 하나의 불이 되듯이 꾸미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건 나와 당신의 이야기.

by 바람길 | 2009/10/16 22:28 | 트랙백 | 덧글(0)

멈추지 않는 손을 위한 광상곡.




  머물어요 바람 사이로 둘 사이로
  하나의 소리가 일곱 개의 창으로 퍼져요
  흔들리는 날이에요 우습도록 잔인한 소리들
  사이로 파름한 강물이 스미고 음란한 바람이 흘러요
  나의 일곱 개의 형제들은 지필 줄 몰라요
  유난히 타자가 안나오는 밤이에요 손을 주세요
  하나의 손을 손을 머무는 손을 손의 사이로
  떨림을 멈출줄 몰라요 아스라히 아스라히
  아스라히 이기는 밤 밤이에요 멈추지 않는
  소리가 있어요 소리는 하나 둘 셋 울림을 감추고
  매질의 사이로 진동해요 우습도록,
  우습도록 잔인하게 피는 꽃이란 누굴 위해 밤새 부르는 노래일까요
  아쉬운 생활이 손짓해요 나는 손, 손은 하나 둘 셋,
  손 사이로 흐르는 강물마다 차가운 전류가 흐르는데 우린 무슨 생을 위해 이토록 잠을 이겨야 하나요
  하나의 손짓이 둘의 손짓이 되고 손은 발을 머금고는 다시 상처를 연주하고 이리 와라, 이리 와라, 하나와 둘을 적시는 이밤,
  나의 수명은 손과 손 사이에서 울음을 멈출 줄을 모르네요

by 바람길 | 2009/10/16 22:14 | 트랙백 | 덧글(0)

소나기, 부활



                   소나기, 부활*




  한 권의 시집을 제목만 읽고 덮었어요 비오는 날이에요 비는 시의 바스라진 조각 슬프지 않아요 모기장 사이로 빗방울이 가루쳐 들어오면 슬프지 않아도 좋아요

  한 권의 시집을 제목도 못 읽고 덮었어요 바스라지는 빗물들 시들지 않는 시들을 볼 때마다 제목도 못 읽고 덮어요 장마가 끝나고 보름만에 오는 비는 어느 밤에 잠 못 들던 누가 짜낸 고름이라 파스름히 흩어지나요? 푸르지 않은 길목마다 뛰어가지 않던 그가 생각나요 눈도 채 못 씻고 지우개만 흔들던 날들 빗가루만 흔들고는 회백으로 물들던 당신과 뭐가 다른가요?

  한 권의 시집을 한 편만 읽어도 좋아요 읽지 않아도 좋아요 비맞은 골판지 거리 사이로 눕지 않아도 좋아요 무엇이 그렇게 검은가요? 무엇이 그렇게 푸른가요? 알지 않아도 좋아요 알려 하지 않아도 좋아요 푸른 곰팡이는 파란가요 푸른가요 당신과 그와 나 사이에 멍든 시집 한 권이 있어도 좋아요 당신과 그 사이에 내가 없어도 좋아요

  물들지 않은 옷감이 조용히 부서지면 어떤가요 흐리게 비치는 언덕 위의 조각지붕이 버옇게 스미면 어떤가요 내가 모르는 당신과 나를 모르는 그가 홀연히 습기가 되어 머물어도 좋아요 비오는 날이에요 한 권의 시집이 표지마다 물을 머금고 있어요




  * 그룹 "부활"의 '소나기' 와는 느낌 외엔 관련이 없다.

by 바람길 | 2009/08/11 17:23 | 양산빵공장 | 트랙백 | 덧글(1)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